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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목적_겨울#2

Kid A가 신보였으니까 아마 고등학생때가 아닐까, 중학교때는 영어음악이 싫었고 고등학생 되서 밴드음악을 좀 듣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다들 그렇듯 라디오 헤드 음악이 참 좋았다. RHkorea라고 개인이 만든 라디오 헤드 팬사이트가 있었는데 그때는 저런 사이트들이 유용했다. 라이브 동영상이나 한글번역된 가사와 기사들, 여러가지 사진들과 소식들 뭐 이런걸 저기 아니면 못봤기 때문이다. 이 사이트는 티셔츠도 만들고 길거리에서 그 티셔츠 입고 있는 사람을 본적도 있으니 아마 아는 사람 꽤 될꺼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데 그때는 더 못했으므로 가사번역 코너가 너무 좋아서 맨날 그거 봤다. 운영자는 가사번역과 더불어 중간중간 본문에 자신의 해석과 느낌을 꽤 장황하게 적어놨다. 잘 기억은 안나는데 뭐 이런식, 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의 중간 나래이션 '나는 편집증일지 모르지만 안드로이드는 아니야'. 해석: 요크는 로봇이 되기 싫다고 하지만 그것도 결국 로봇의 목소리로 표현해 두었네요. 뭐뭐와 뭐뭐와 사이의 괴리가 참 안타깝습니다. 그맘때 나는 어리고 성글어서 저런걸 철썩같이 믿었더랬다. 그리고 상상하고 발전시키고 떠들고 다녔다. 이런 기억은 참 소중하긴 하나 동시에 부끄럽기도 하다.

 

가끔 티비에 나오는 오디션 프로 재방송을 본다. 노래 잘하는 사람들 참 많다. 근데 프로가 너무 길다! 누군가가 요새 음악은 듣는거 아니고 보는거라고 하는데 이건 보는 수준을 넘어서 친구가 되어야 하는 수준이다. 내가 왜 그런걸 다 알고 들어야 하는데!!! 나가수는 조금 더 한것 같다. 드디어 판이 이렇게 근사하니 잘 짜여졌으니 나는 맘놓고 감동해도 쪽팔리지 않겠구나 하며 눈물흘리는 사람들, 미세하고 수준 높아 보이지만 공허할 뿐인 평가와 감상, 주변인들의 정말이지 호들갑, 하나같이 다들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한다고 하는 아주 건전하고 생산적인 태도의 가수들, 그러면서 있는 노래 바꿔서 맨날 또 하고...

 

음악만으로 줄 수 있는 감동의 크기는 다소 한정적인 듯 하다. 듣는데는 그리 큰 시간과 집중이 필요치 않다. 특히 영화와 비교할때 음악이 때워 줄 수 있는 시간과 보여줄 수 있는 서사는 아주 적다. 따라서 음악은 영화와 달리 자체로 목적이 되기가 힘들다. 음악은 영화와 같은 집중의 개념보다는 공간의 개념, 채움의 개념이라는 생각이다. 이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느 딱한 고등학생의 중2병 라디오 헤드 드립처럼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노골적으로 돈과 합쳐지게 되면 음악은 그냥 기능이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은 이런 환경 속에서 결국 더 작은 소품이 되어간다.

 

아마 음악도 어느정도는 예술이겠다. 그러니 음악에도 과잉과잉한 느낌의 강요와 추억하는 정서에 빌붙은 우려먹기만이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노래 잘하는건 참 멋진일이지만 그게 무슨 육질등급 매기는거 마냥 즉각적으로 평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난 한글밖에 모르니까 두고 두고 읽고 싶은 한글가사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이 노래도 잘 만들었음 좋겠다. 목소리 잘 나오고 편곡 잘한사람 한테 1등 주지 말고 노래 잘 만든 사람한테 1등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간해선 그런 줄세우기는 따위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 심심하거나 이상한 한국 음악들도 많이 좀 나와 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심심하지만 좋지도 않은 아직 음악도 아닌 성의까지 없는 소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