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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 인생

 타자는 공을 보고 치지 않는다. 시신경에서 전송된 신호를 해석하여 스윙을 하라는 명령이 온몸에 전달되어 실제 움직임이 가능한 시점까지의 시간이 공이 투수의 손에서 빠져나와 타석에 이르는데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길기 때문이다. 흡연자의 경우 담배에 손을 뻗는 순간이 담배를 피워야 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보다 항상 빠르므로 흡연에 대한 통제력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그러므로 좋은 타자들은 동체시력이 좋은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꾸준한 연습과 더불어 투수의 성향과 게임의 패턴을 잘연구해왔으며 무엇보다 도박에 강한 사람들이다. 또 흡연자의 경우를 보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에 담배를 피우는게 허용되지 않으므로 그들의 절제는 선택되어진 것이 아니라 강요 당한것 이라고 해야한다.

 

 하지만 타자는 자신이 공을 고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흡연자는 본인이 담배피는 순간을 선택하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그것을 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담배의 맛을 알게 된 시점부터 그들은 담배를 피울 자유도 담배를 피지 않을 자유도 온전하게 가져본 적이 없다는걸 그들은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기억력이 있고 항상 취해있진 않다거나 아직 미치진 않았다는 비교적 스스로 납득 할 수 있는 이유로 시간을 마치 어느정도는 내가 원하는대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푸쉬알람으로 대표되는 내 시간을 빼앗아 그들의 이익을 위해 나를 사용하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 외부의 수상한 자극에 대해 어느정도 대항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 역시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항상 나는 어떤 성취하여야 할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유로 현재를 유보시키는 걸 즐긴다. 이를테면, 적당히 멋진 자동차를 사면 시간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책장에 멋진 책들이 꽂아 두었으므로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그것들을 모두 읽어버려 좀 더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순진하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자동차 할부금을 내기 위해 나는 회사를 때려치지 못할 것이므로 시간이 가장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책장에 가지런히 꽃혀있는 책들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진리를 각자 품은채 애정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그 때 나는 가장 편하고 익숙한 장소에 놓여 있는 멋진 컴퓨터 앞에 앉아 시덥잖은 게임이나 하고 있을 것이므로 그것들의 애처로운 시선을 끝내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집에는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아주 많고 그것을 자랑하거나 버리거나 파는것 보다는 읽고 싶다고 생각하므로 나는 알고 싶은게 많은 사람인거 같다. 아직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고 기타를 조금 더 잘 치면 할 수 있는게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는게 아직은 재미있고 당장 데모정도는 충분히 녹음할 수 있는 장비와 습작을 가지고 있으며 항상 공부가 끝나면 공연을 다닐 것이라고 떠들고 다닌지가 적어도 3년은 되었으니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하루하루 자유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말하자면 가장 억압이 없는 시간에 대부분 게임이나 하고 미드를 보며 진짜를 추구하는걸 미루는데 안간힘을 쓴다. 하나도 재미없고 그다지 자극적이지도 않으며 반복적이기만한 전형적인 뻘짓을 하며 그리고 그것에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끼며.

 

 또 대폭적인 소비의 증가가 어렵다는 이유로 현재의 행복을 깍아 내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곤 하는데 소비의 증가를 통한 만족의 지속은 수학적으로 불가능 하므로 이것은 꽤 심각한 문제이다. 별탈 없이 부족함 없이 살면서도 인생의 자유를 위해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은 무식한 일이며 나아가 거기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예를 들며 자조하는 것도 참 교활한 행동이었다.

 

 할일이 없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뭐 할게 없을까 하며 가끔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이 참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언젠가 부터 바닥도 없이 망가져 가고 있는 내 인생이 보내는 마지막 구조신호 라는 걸, 머리에 구멍을 내거나 척추에 단자를 연결해야만 매트릭스에 잠식되어 시스템의 부흥에 존재를 마구 바치게 되는게 아님을, 나를 가장 많이 억압하는 것은 언제나 내자신이며 인생을 사는 법에 있어서 고작 나는 겨우 내밥벌이 해먹는 초보자의 수준이라는걸 나는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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