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1.
어떤 오래된 사람은 아름다움이란 결국 종의 보존을 위한 의지의 작용이라고 했다. 그 말에 따르면 각선미라는건 우리가 직립보행을 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젊은 여자가 좋은 이유는 아무래도 건강한 후손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래서 젊은이들이 그런것에 휘둘리지 말기를 바랬다고 한다. 어떤 다른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조금은 불충분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말하자면 아름다움에는 앞서 말한 신체적인 요구 이외에 다른것, 이를테면 어떤 감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하며 이런것들은 사실 억압에 대한 반작용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어느 시인은 모든 병적인 것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어떤 병적인것은 아름답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가임성과 나에게 없는 우수한 형질의 획득 가능성으로만 보고 늙음을 그저 퇴화의 과정으로만 여겨왔다고 반성했지만 그래도 약정이 끝난 다음날 티비를 끊어버린건 좀 잘한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전2.
그는 월급 3만원의 어떤 소녀가 커피를 따고 있는 모습을 찍어대며 그 표정이 아름답다고 이야기 했다. 황폐하고 척박한 땅, 무엇보다 착취의 깊은 수렁에 빠져있는 그 땅을 무슨 신의 선물인것 마냥 이야기 했다. 쓰나미가 가족을 죽였지만 그 바다는 여전히 나의 삶의 터전이라고 했다고, 내전지역의 부모잃은 아이를 껴안자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더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끝내 절망보다 우정이 강하고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고 써놓는다. 그는 이 부분에서 조금은 교활한 방식의 생략법을 사용했는데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는 그냥 절망과 죽음이 아닌 남의 절망과 죽음이라고 써놓아야 했을것이다. 그 옛날 초등학생 책받침에도 쓰기 민망할것 같은 수사를 곁들여 미화도 어엿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언젠가 시집을 쓰기도 했었다는 그는 비극을 철저하게 남의 일로 보며 다른 사람들의 불행으로 쌓은 제단에 올라 아랫것들을 굽어보는 댓가로 오늘도 맛있게 밥을 먹을 것이다. 평생 쓸데없는 싸움을 해왔을뿐이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여전히 보잘것 없는 경력의 그는 영민한 직업전선의 일꾼으로써 하루를 살아 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