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말리아 해적 팀의 우두머리는 화물선을 약탈해 번 돈으로 미국에 가서 자동차를 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온갖 역경을 헤치고 각자 나름의 업무에 성실했던 그들에게 던져진 결과는 죽음과 감옥이다.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투항임을,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타협의 여지가 있어 보임을, 어쩌면 그것이 미국에 가서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을 그는 끝내 알지 못한다. 이렇게 그들이 실패할 자유조차 가지지 못한 이유는 일찌감치 도망쳐 버린 보스가 너무나 무섭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회사는 나를 나의 향후 10년 근로소득을 훌쩍 넘는 정도의 돈을 받으며 다른 회사에 매각한다고 했고 과정에선 거짓말이 있었으며 나는 그것이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해고가, 창피가, 또 모르겠는 어떤 것들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아무말도 못하고 동의했다. 그리고 이제 비롯된 모든 결과는 오롯이 내가 선택한 것이 되었다. 냉소는 가장 교활하고 비겁한 방식의 분노다. "원래 일 열심히 안했지만 이제 더 안해야겠어요. ㅎㅎㅎㅎ" 라고 별일 아닌듯 지랄지랄 대며 정작 저 멀리, 혹은 바로 등 뒤에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기회를 알아채고 골몰하거나, 그게 안 되면 그냥 안하겠습니다! 라고 하지도 못하는 나는 너무나도 겁이 많고 더럽게도 길들여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인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렇게 우연과 악의의 힘찬 물결에 맥없이 휩쓸리며 비겁하게 죽어갈 것이 뻔해 보인다.
'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계인의 시선 (6) | 2014.01.23 |
---|---|
초보자 인생 (4) | 2014.01.21 |
더 사랑하는 사람이 패자라고 하는 사람이 언제나 패자인 이유 (0) | 2013.10.29 |
제주도 여행 (2) | 2013.10.13 |
잉크모니터와 인코그니토 (4) | 2013.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