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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무심함

 서울역에는 노숙자가 있다. 이상하게 나는 그들이 싫거나 밉거나 하는 대신 그들을 무서워 한다. 일반적으로 무서움이란 나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거나 혹은 입힐 것 같아 보이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보통 지나가는 사람에게 품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의심은 그들이 모종의 이유로 나의 것을 빼앗거나 때리거나 하는 것인데 노숙자들이라고 그럴 우려가 특별히 더 많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오히려 대부분 영양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므로 효율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보통 적다고 봐야한다. 기껏해야 한두미터 이하로 접근하지 않으려하거나 혹여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모른척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들과의 관계의 전부임에도 그들을 무서워 하는건 참 이상한 일이다.

 

 사실 그들은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이 오래동안 상수도 시설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누구든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된다.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가 존재하기 떄문에 발생되는 어떤것들을 씻어내는데 익숙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나와 관련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모두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M의 말대로 사람은 혼자서도 유유자적한 고양이과가 아니고 개과이기 때문에 완전한 사회적 고립은 사람의 정신을 광범위하게 무너뜨린다. 버림받음에 대해 복수할 모든 수단을 빼앗겨버린 사람은 어쩔수 없이 자신에게라도 복수를 해야하므로 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어떤 분열 그리고 의존의 모습은 자신을 향한 복수의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뭐 이렇게 쓸데없이 꼬아서 말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모습들은 그저 절망의 모습들이고 우리는 사람만이 절망할 수 있다고 대체로 믿고 있기 때문에 역시나 그들은 모습은 인간적이다. 그저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말할순 있겠지만 글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리 큰 차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노숙자가 없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아직은 실내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도 언젠가 노숙자가 되어버릴 수 있는 확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도 못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듯이 굴고 있다. 무슨 유령이라도 되는 것 마냥 필사적으로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조금이라도 겹치는것을 그렇게도 두려워 한다. 타인의 삶이 나에게 주는 영향이 그다지 없음에도 그 삶의 존재감이 그렇게도 신경이 쓰인다면 그건 사실 그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내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왔음을 스스로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나는 그들의 있는지도 모르는 병원균이나 바이러스, 더 재수없게 말한다면 죽음을 닮은 어떤 모습들을 무서워 하는게 아니고, 그저 내 삶의 어떠한 견고한 전제들이 사실은 모두 허위고 거짓이라는 사실이 그들에 의해 아주 간단하게 드러나는 버리는 현실을 무서워 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타인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나의 삶은 없다. 나의 안전의 정도는 지금까지 다치거나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비극의 크기에 비례한다. 전 지구적으로 이미 식량은 넉넉하지만 아직 모든 사람들이 밥을 제때 먹고 살지 못하므로 나의 풍요는 또 다른 누군가의 빈곤에 근거한다. 또 지금 책상에는 컴퓨터가, 종이가, 그리고 커피가 있으므로  나는 책상머리에 앉아 예전에 살던 어느 누구보다도 동시에 광범위한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이들을 지지하거나 그냥 내가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노숙자에게 그저 무관심의 시선을 던져왔을 뿐, 한번도 노숙자가 없는 세상을 위해 애써본적이 없으므로, 누군가는 노숙자가 되어야 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그들의 불편은 나의 안락의 근거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다만 무심함으로 모든 것을 모른체하며 착각속에 집을 짓고 틀린 관념이 그저 현실이라며 믿고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아무도 착취하지 않고, 노숙자가 사실은 우리들 다수에게 버림받음을 강요당한 사람의 모습이라는걸 인정안하는 착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양심의 가책을 하루종일 느끼지 않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으며, 하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면 그것이 느껴지지 않을것이라는 더 무모한 착각을 하면서 또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착각들은 타인의 삶에 대한 무심함에서 비롯되고 타인의 삶에 대한 무심함은 나의 삶에 대한 무관심의 가장 큰 근거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올라서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아마 평생 피착취의 대상이 될 듯하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서 말한 모든 무심함은 마찬가지로 나에게 행해지는 착취와 불행의 견고한 근거가 되어 줄 것이므로, 무심한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거나 거부할 입장이 전혀 안됨을 조금 더 알아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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