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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와 진리

 큰 노예가 작은 노예에게 너는 왜 그렇게 당당하냐고 자꾸만 뭐라한다. 작은 노예의 손에는 지난밤 얻은 약간의 진리가 실오라기 처럼 감겨있다. 지난밤 작은 노예에게 진리는 말한바 있다. 나의 진리가 너에게 자유를 줄 것 이라고 참으로 진지하게도 이야기 했다. 진리는 자유를 준다는데, 작금의 시점에서 작은 노예의 진리는 언제나 죽음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만 열려있어 작은 노예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은 노예는 성실하므로 진리가 말한대로 큰 노예 인생의 망침을 자신의 인생의 망침에 근거로 삼지 않기 위해 참 열심했다. 작은 노예는 큰 노예를 매일 쳐다봐야만 하는 입장이므로 그런 종류의 열심은 언제나 작은 노예에게 죄책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죄책감은 작은 노예를 점점 혼자로 만들지만 왠지 의기양양하게도 만들어 작은 노예는 가끔씩 삶과 삶이 아닌것을 지맘대로 구분하고 혼자 한참을 떠들었다. 하지만 참 피곤한일이다. 생각했던 자유는 끝내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밤, 진리는 엄숙하게 작은 노예에게 이제 자유의 뜻을 수정할 단계가 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너도 참 성실한 학생이었으나 나도 참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진리는 말했다. 진리가 수정한 자유의 의미는 절망이지만 또 그렇다고 진리는 자유가 절망이라고 대놓고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그냥 은유했다. 작은 노예는 이제 노예도 못하고 노예가 아니지도 못하고 노다지 남은건 약간의 진리일 뿐이라 엉거추춤 하므로 틈새에선 무언가가 새어나온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작은 노예는 언덕에 올라 틈새를 부여잡고 슬프게 울었다. 저멀리서 큰 노예는 작은 노예를 보며 추억한다. 큰 노예는 특유의 어른스러운 몸짓으로 작은 노예에게 잔을 선물하고 선불로 삶을 지불하는 법을 세세하게 일러준다. 아직은 슬플 수 있는 작은 노예에게 그것은 일종의 구원으로 보인다. 작은 노예는 그렇게 큰 노예가 되어갈 전망이고 지난 밤의 진리는 그가 약간 더 큰 노예가 되는데 일말의 도움을 주기도 할 것이나, 삶은 좀 더 지긋지긋한 것이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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