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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망상

 나는 카카오톡을 한다. 휴대 전화기를 쳐다보고 있는게 싫어서, 혹은 아무래도 그게 내 삶을 갉아대고 있는거 같다는 망상이 들어서 일부러 오래된 기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서 꽤 남들보다 오래동안 안하긴 했지만, 끝내 나는 카카오톡을 했고 그게 참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질 수 없다고 생각해 항상 모든 알람을 꺼놓지만 알람에 대한 기대감을 꺼놓는건 사람의 능력밖이라 나는 자주 기웃거린다. 이러한 기웃거림의 양과, 알람이 있다면 그것에 쏟게 될 주의의 양과, 혹은 굳이 그것을 따져야 하는 강박의 양을 저울질 하는 일은 아마도 숙면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겠지만 이것은 왠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달팽이는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껍질을 자기의 일부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달팽이는 자기가 껍질을 아주 편리한 도구로써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달팽이의 세계에서 민달팽이와 달팽이는 그저 선택의 차이다. 물론 달팽이가 민달팽이를 노숙자 취급하고 있다는걸 짐작할 수는 있다. 누군가는 그의 짧은 책에서 외계인은 사람이 금속의 껍질에 점점 둘러 쌓여 가며 퇴화하고 있다고 한다 했다. 우리는 달팽이와 이야기 해본적도, 외계인을 만나본적도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구성하고 것들만 자신이라고 여기는 건방을 떨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실 자신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이러한 건방진 분류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 외부 기기들에 대한 통제권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오늘은 기분이 좀 나쁘다고 심장을 잠깐 멈출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쓸데없이 시간을 떠내려 보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몇가지 자극들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 자극이 우리를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자극을 선택하여 누린다고 생각한다. 잠을 잔다는 것은 내일의 활동을 위한 휴식과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삶과 닮아 있다. 하지만 시간을 그저 떠내려 보낸다는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것은 잠보다 더 죽음같은 일이지만, 그런 상태가 되는걸 우리는 부담없이, 오히려 기꺼이 받아 들이곤 한다.

 

 그 결과 매트릭스는 더욱 더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제 힘들게 머리에 구멍을 안뚫어도 사람을 맘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걸 알고 있는 나는 다만 무력하다. 그러므로 나는 카카오톡을 하지만 언제나 카카오톡은 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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