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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적인 아픔

 나보다 크기도 작고 힘도 약한 바퀴벌레나 모기가 때때로 무서운 이유는, 모종의 이유로 나와 그들의 삶이 겹쳤을때, 그래서 그들의 삶을 끝내버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때, 나의 삶이 하나도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하루도 아프지 없는 날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내가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대책없이 낙관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햇살이 좋은날이면 아주 기분이 괜찮아져서 모든것이 이제는 그저 흔적으로만 남았다고, 산다는건 원래 아픈거 아닌가!?!? 하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곤 했다. 물론 이제 괜찮은 아픔은 절대 아픔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러한 혼잣말은 그냥 내가 지금 당장은 조금 괜찮다는 표시이고 당연히 이것은 조만간 다시 아플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해 있을 뿐이므로, 그저 딱한 표시일뿐이다. 아픔은 참 아픈일이므로 어쩌면 괜찮게 살아간다는건 아프지 않고 사는 것 일지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아프지 않고 살 순 없었다. 아픈게 싫어서 아픔이 올 수 있는 가능성을 자주 외면해보기도 했지만 이런 순진한 노력의 결과는 그저 예상치 못한 아픔일이었기 때문에 이 경우, 나는 대부분 더 아팠다.


 이번 일주일간 깊게도 이어진 이번 아픔이 요 근래 지나갔던 수많은 아픔들에 비해 조금 더 힘들었던 이유는, 그래서 새벽 두시에 자다깨서 한참 산책을 해야했고, 또 그 밤중에 딱하게도 아스팔트로 길을 잘못 들어 버린 지렁이의 힘든 몸짓에 반사된 가로등 불빛을 그렇게도 한참 바라봐야 했던 이유는, 그리고 근거라고 하기도 뭐한 지질한 신호들을 나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만 열심히 해석하느라 빛나는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런 말도 안되는 글을 꼬깃 적으며 아직도 어떤 결과를 내심 바라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아마 희망과 관련된 가장 힘든 방식의 아픔이었기 때문인것 같다.


 희망은 현실의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상상이다. 희망은 일말의 가능성만로도 충분히 현실을 압도할 만큼 자라난다. 세계정복이나 식스팩의 보유같은 바램이 나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내가 은연중에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이 때때로 던져주는 어떠한 사건들은 그것이 나의 삶을 아주 좋게 해줄 것이라는 전망을 주는 동시에 -물론 대부분 착각이다.-, 어떻게 한번 잘해보면 될 것도 같은 약간의 타당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래서 특정한 사건은 종종 커다란 희망의 대상이 된다.


 나는 언제나 판단력 보다는 상상력이 뛰어나므로 희망을 가지는일, 그러니깐 현실의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상상을 통해 그것이 마치 이루어져 버린 듯한 느낌을 맘대로 가지는 착각을 하곤 했다. 착각은 언제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가장 큰 적이지만 희망적인 나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으므로 그것을 절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희망하는 나는 희망적인 착각에 들떠서 평소에는 안하던 짓을 하고 매번 잘하던 일을 크게 잘못하기도 했는데, 그런면에서 희망은 희망을 이루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현상이기도 했다.

 

 일을 그르치는 건 확실히 힘든일이지만 희망하는 일에는 사실 훨씬 더 아픈 문제가 있다. 나는 희망했으므로, 그것이 마치 당장 이루어진 듯한 느낌을 맘대로 가져봤다. 그래서 나의 현실인식은 진짜 현실과 한참 동떨어져 버리게 된다. 희망하는 나의 적극적인 상상은 언제나 환상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환상적인 이유는, 혹은 모든 환상이 환상적인 이유는, 그것이 나의 가장 약하고 슬픈 부분을 적나라하게 반대로 드러내 준다는 사실에 기반해 있다. 희망은 내 현실의 우울한 부분과 정확히 반대되는 행복의 세상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희망이 창조한 세상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므로 만약 내가 전지전능하다 해도 대부분 실제로 존재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나는 그 속에서 나의 우울한 현실을 잠시나마 초월하므로 환상속에서 창조된 현실, 정확히는 자기기만을 점점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러한 초월이 길어지고 심각하게 여물면 나는 발을 얹고 있는 진짜 현실을 점점 비현실로 여기고 싶어진다.


그래서 희망하는 나는 결국 변한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변한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로 인해 지금의 현실을 당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여김으로써 참 아파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 이런쪽으로 나는 내 생각보다 똑똑하므로 은연중에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다. 사실 실패할 것 이라고, 그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은연중에 알았지만 그걸 받아들이기 싫어서 그렇게도 희망을 품으며 열심했으므로 나는 곧잘 좌절하고 아프게 된다.


 희망이 있었음에 감사하라고, 그래도 희망을 꿈꿔야 하지 않냐고 하는 사람이 외계인이 아니라면, 그는 분명 아파본적이 있었을 것이므로 자신의 아픔을 위해 굳이 남의 아픔을 폄하할 필요가 있었던 사람일 것이다. 아픔은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경우에서든지 철저히 소유자만을 아프게 할 뿐이다. 요 며칠 나는 희망이 부러져서 혼자 참 아팠다. 하지만 희망을 건네준 세상은 그것이 절대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듯 참으로도 무관심하게 굴어서 그걸 생각하며 조금 더 아파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대부분이 이런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오며 놀랍게도 희망했고 앞서 보시다시피 그것들은 대부분 부러져서 나를 참 아프게 했고, 오밤중에 지렁이를 오래 쳐다보게 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아직 희망없이 사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리 이제 희망하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을 해봐도 언젠가 또 다시 다가온 어떠한 반가운 기회와 신선한 몸짓들에 한껏 들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껏 희망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대책없이 더 아파야 할 것도 같지만, 그저 희망하느라 나의 소중한 현실에 큰 결례를 범할 수는 없으므로 어렵겠지만 이번 희망에 안녕을 말하는 일 정도는 해보려고 한다. 새벽 두시에 걸으며 듣기 좋은 곡은 절대 아니지만, 또 이번 아픔과는 사실 별 상관없는 내용의 노래긴 하지만, 나는 이 노래가 말하는 안녕이 언제나 참 좋았다. 모든 건 쓰고 나면 별일 아닌게 되지만, 그리고 사실 별일도 아닌 것에 나도 참 요란한 것이 사실이지만 말하겠다. 안녕 이번 희망아. 고마웠어.




 

              지금 당장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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