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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치고 싶은 마음

기타를 치는 일과 기타를 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는 일은 아주 다른일이다. 오히려 기타를 치고 싶은 마음은 대부분 기타를 치는 일을 아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다. 왜냐하면 기타를 치고 싶다는 마음은 한 3분, 조금 컨디션이 좋다면 한 10분 정도 집안 한 귀퉁이에 앉아서 -나는 좁은 가운데에서도 이곳을 참 편하게도 꾸며 놓았다.- 기타를 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기타를 잡는 순간 여태껏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어떤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 왜인지 나도 모르는 어떤 멋진 소리들이 나에게 들려주었으면 하는 일종의 허구적 바램이기 때문이다. 기타가 멋지거나, 콘덴서 마이크가 있다면 조금 더 괜찮게 속을 수 있다.

 

내가 지금 당장 기타를 치고 있다면, 혹은 기타치고 있는 나를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희미하게나마 조망할 수 있다면, 나는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타를 치는 일과 기타를 치고 싶음을 생각하는 일은 아무래도 동시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내가 기타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는 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기타를 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증거가 된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기타를 치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 나의 기타치지 못함을 우울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기타를 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대책없이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현실인식이 어느 지점에서 심각하게 끊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끊어진 곳에는 콘덴서 마이크와 아직도 설치하지 못한 로직10의 토렌트 다운로드 파일이 널려 있다.


기타를 치고 싶은, 혹은 삶을 살고 싶은 나는 삶을 살수도 있지만 삶을 사는것 같아 보이는 어떤 것들을 보며 나의 아마도 가장 절박한 바램일 삶을 살고 싶은 바램을 그때그때 대충 때워 넘길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삶을 대충 때워 넘길 수 있는 방법을 한시간에 열댓개씩 그것도 끊임없이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렇게 나는, 대충 때우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사는건 조금 우울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걸 멈출 수는 없는지 영악하게도 나는 내가 지금 삶을 대충 때워 넘기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끊임없이 잊고 싶어 한다. 남자 주인공이 베이스를 칠 줄 모르는게 너무 티난다며, 그런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며, 돈으로 음악을 들어낸 자리에 판타지를 채웠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잔소리를 하며,

 

 

 

 

 


비긴 어게인 (2014)

Begin Again 
8.4
감독
존 카니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 헤일리 스테인펠드, 제임스 코덴
정보
로맨스/멜로 | 미국 | 104 분 | 201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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