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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설국열차 (스포일러포함)

 언젠가 똑똑한 친구 P는 자기의 목표는 어떤 울타리를 세우는 거라며 어느 정도 힘센사람이 되어서 울타리 안의 내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다고 했다.


 에리히 프롬의 책에는 믿어 버리고 싶은 말이 참 많이 써있다. 사람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자연을 차츰 정복해 나간 결과 얼어죽거나 굶어죽을 걱정이 없어졌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남는 시간에 생각이라는걸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희생에 힘입어 오랫동안 사회가 개개인에게 가하던 억압이 점점 줄어들어 왔으므로 사람들은 좀 더 여러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고 서로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환경이 뒷받침 되어 다수는 드디어 아주 오랜 기간동안 소수의 특권으로만 여겨졌던 개인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의외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전의 수많은 사람들과 이후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와 다른 분리된 존재라는걸 알게 되는 것이라 이것은 본인에게 고립이라는 괴로움을 줄 위험이 있다. 그리고 당해보면 고립은 의외로 배고픔보다도 괴로운 일이다. 또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많아짐에 따라 자신의 한계와 보잘것 없음, 아직도 남아 있는 억압과 부조리에 대해 절망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런것들은 개인으로써 존재하는 고통이라는 아주 생소한 종류의 고통을 발생시키는데 이를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수많은 세대의 희생으로써 얻어진 자연에 대한 지배와 사회적 억압에서의 해방을 버리고 다시 여러가지 형태의 억압을 찾아다니고 만들어 낸다. 이것이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자유로부터의 도피이다.


 재해는 수많은 불안전한 행동과 불안전한 상태가 직접원인으로 작용하여 되어 발생하는 일련의 인과관계라고 내가 공부하는 책에 써있다. 나는 공부하느라 그 문장을 아마 한 백번은 써댔던것 같다. 영화에서 나온 세상의 종말은 누구 하나, 혹은 어떤 일관성 있는 무리의 행동에 따른 결과라기 보다는 임의의 수많은 위험요인이 마침내 적절한 시기에 모두 작용해 버린 일종의 거대한 악운이다. 비슷하게 쇳덩이 안에서 조물주 놀이로 사람 죽여가며 허세떨 수 있는 것도 결국은 당사자에게 주어진 큰 행운 이상이 아니겠다. 그리고 행운이든 불운이든지간에 그뒤에는 항상 죽는 사람,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행운과 불운의 크기와 비례한 숫자만큼 깔려있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걸 감수할 만한 주제가 없다.

 

 영화속 우리들의 영웅은 꼬리칸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대의를 위해 그들의 74%를 죽이는 계획의 일등공신이 되어 버렸다. 바깥 세상의 변화를 알아챈 민감한 감수성의 소유자 남궁은 그게 그렇게 보고 싶고 입증하고 싶어서 멋진 말을 곁들여 열차를 탈선시켜 버린다. 나는 이사람들과 내내 악의 축으로 묘사된 몇몇들과의 차이점을 외모 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의 진지한, 일부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는 대의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순간, 대다수 사람들의 상황은 더욱 더 좋지 않은 상태가 된다. 과연 이것은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기꺼이 협력함으로써 자유로부터 자진도피했기 때문에 (혹은 근로 계약서에 사인했기 때문에) 그들의 책임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일까? 대부분의 연대는 한사람의 신념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도구로 사용하는것 이라고 말한다면 정말로 이기적인 놈이 되어 버리는 걸까?

 

 바보들은 항상 있어 왔고 우리들은 모두 일정 부분에서 바보짓을 안하고 살 순 없으므로 세상은 위험요소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위험요소들의 악의적인 상호작용으로 인한 크고 작은 피해를 일단 최대한 피하고 보는 일, 만날 수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굳이 도우려 하지 말고 그냥 눈앞에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일, 삶의 목표가 그저 나 편하자고, 말하자면 개인성의 최대한의 발휘라고 떠들어 보는 일이 그렇게 이기적인 일일까? 내 손을 이용해 취향껏 울타리를 지어 보고자 하는게 그렇게 눈치 봐야 할 일일까? 조종당하거나 남들을 조종하는 일에 치를 떠는 일이 그렇게 손해보는 행동일까? 엔진이 멋있고 완벽하다는 것 말고는 열차가 굳이 달려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나는 가끔 고단하고 자주 슬픈 생각이 든다. 나야말로 그럴 주제가 참 없는데,

 

 

 

 

 

 


자유로부터의 도피

저자
에리히 프롬 지음
출판사
홍신문화사 | 2006-06-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살펴보는『고전으로 미래를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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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7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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