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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마트에서 충동구매한 화분이 금방 시들해졌다. 아마도 볕이 잘들지 않는 곳에 화분을 두고 거기다 물도 제때주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화분을 죽여본적이 몇번 있어서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가 드는 베란다로 자리를 옮겨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화분에 물을 얼마나 줘야하는지를 모르고 있단 사실을 알았는데, 그건 내가 화분을 충동구매할때 담당직원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화분에는 그 식물의 이름이 쓰여져 있고 나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으므로 화분의 생존을 위해 3분 남짓의 시간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 조금은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미루어 짐작해 보니, 나는 화분을 키우고 싶었다기 보다는 화분을 사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나보다. 화분에는 생물이 자라고 있는데 이럴때 보면 새삼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화분에게는 햇빛과 적당한 물이 필요했는지, 자리를 옮기고 인터넷에서 찾아본대로 겉흙이 마를때마다 물을 주었더니 금새 건강해졌고 생각보다 잘자랐다. 하지만 나의 무관심과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대여섯 줄기중 두줄기가 노랗게 시들어 버렸다. 나는 그 줄기를 뽑아서 버려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왠지 무섭고 귀찮아서 한참을 내버려 두었다. 며칠이 가고 겉흙이 마를때마다 물을 주는게 사실 아무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또다른 화분을 키우고 싶다는 참으로 무책임한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길때쯤 나는, 신기하게도 노랗게 시들어 버린 줄기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화분은 분명 자신의 생존과 성장을 어떤 무심하고 미숙한 사람의 같지도 않은 부지런함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화분은 자기가 오고 싶어서 우리집에 온게 아니다. 그래서 화분은 그저 잠깐의 기분에 화분을 사고 싶었을뿐 키울만한 사람은 못되었던 나로 인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화분의 입장에서 나는 자신을 망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실상 나는 이제라도 화분을 돌봐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화분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화분을 조금 망쳐버렸다는 사실로 인해 화분을 그만 쳐다보는 일을 하진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들어 버린 줄기가 다시 녹색이 되는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내 맘대로 그것이 죽었다거나 화분이 망했다거나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또 했다. 좀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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