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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애매함과 모호함을 사랑하는 일, 그만큼 운명을 믿는 일, 그래서 침묵하는 일, 결국 절망하는 일, 혹은 모든게 그저 주파수가 맞는 둘사이에 껴있는 혼자인 사람에 대한 일, 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일, 나에 대해서 절대로 이야기 하지 않는 일, 그래서 내 입은 언제나 내 이야기 만을 한다는 뻔한 사실을 기만해 보는 일, 무엇보다도 거리를 지키는 일, 하지만 그것이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 아닌 적어도 도의에서 비롯 된 것 임을 보이는 일, 하지만 그 일이 도의를 가짐이 아닌 도의를 가짐을 보이기 위한 장치라는 사실을 순간 잊음으로 장치의 효과를 극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일, 말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한다고 인용하는 일,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반항하는 일. 죽음에.. 더보기
희망적인 아픔 나보다 크기도 작고 힘도 약한 바퀴벌레나 모기가 때때로 무서운 이유는, 모종의 이유로 나와 그들의 삶이 겹쳤을때, 그래서 그들의 삶을 끝내버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때, 나의 삶이 하나도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하루도 아프지 없는 날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내가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대책없이 낙관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햇살이 좋은날이면 아주 기분이 괜찮아져서 모든것이 이제는 그저 흔적으로만 남았다고, 산다는건 원래 아픈거 아닌가!?!? 하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곤 했다. 물론 이제 괜찮은 아픔은 절대 아픔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러한 혼잣말은 그냥 내가 지금 당장은 조금 괜찮다는 표시이고 당연히 이것은 조만간 다.. 더보기
노예와 진리 큰 노예가 작은 노예에게 너는 왜 그렇게 당당하냐고 자꾸만 뭐라한다. 작은 노예의 손에는 지난밤 얻은 약간의 진리가 실오라기 처럼 감겨있다. 지난밤 작은 노예에게 진리는 말한바 있다. 나의 진리가 너에게 자유를 줄 것 이라고 참으로 진지하게도 이야기 했다. 진리는 자유를 준다는데, 작금의 시점에서 작은 노예의 진리는 언제나 죽음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만 열려있어 작은 노예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은 노예는 성실하므로 진리가 말한대로 큰 노예 인생의 망침을 자신의 인생의 망침에 근거로 삼지 않기 위해 참 열심했다. 작은 노예는 큰 노예를 매일 쳐다봐야만 하는 입장이므로 그런 종류의 열심은 언제나 작은 노예에게 죄책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죄책감은 작은 노예를 점점 혼자로 만들지만 왠지 의.. 더보기
망상 나는 카카오톡을 한다. 휴대 전화기를 쳐다보고 있는게 싫어서, 혹은 아무래도 그게 내 삶을 갉아대고 있는거 같다는 망상이 들어서 일부러 오래된 기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서 꽤 남들보다 오래동안 안하긴 했지만, 끝내 나는 카카오톡을 했고 그게 참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질 수 없다고 생각해 항상 모든 알람을 꺼놓지만 알람에 대한 기대감을 꺼놓는건 사람의 능력밖이라 나는 자주 기웃거린다. 이러한 기웃거림의 양과, 알람이 있다면 그것에 쏟게 될 주의의 양과, 혹은 굳이 그것을 따져야 하는 강박의 양을 저울질 하는 일은 아마도 숙면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겠지만 이것은 왠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달팽이는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껍질을 자기의 일부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달팽이는 자기가 껍질.. 더보기
무심함 서울역에는 노숙자가 있다. 이상하게 나는 그들이 싫거나 밉거나 하는 대신 그들을 무서워 한다. 일반적으로 무서움이란 나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거나 혹은 입힐 것 같아 보이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보통 지나가는 사람에게 품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의심은 그들이 모종의 이유로 나의 것을 빼앗거나 때리거나 하는 것인데 노숙자들이라고 그럴 우려가 특별히 더 많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오히려 대부분 영양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므로 효율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보통 적다고 봐야한다. 기껏해야 한두미터 이하로 접근하지 않으려하거나 혹여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모른척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들과의 .. 더보기